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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NIA
frank
Haryu N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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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2000. 04. 22.

 

인류가 탄생한 이래, 혹은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도입부가 그러했듯 유인원이 뼈를 집어든 이후, 사람은 하늘을 향하기 시작했다. 북극성을 지표 삼아 항해한 뱃사람, 밤하늘의 동심원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 세월이 흘러 대기권 너머를 그릴 수 있게 될 즈음 우주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이 정립되었다. 시간적·공간적으로 광막히 이어진 세계,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집합이라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은 인류의 미제로 남아있다.

 

내가 갑작스레 이런 글을 남기게 된 건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이것은 곁에 있는 괴물의 눈을 마주하고 그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필히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한 지성인이 자신을 고립된 섬에 빗댄 순간부터 인간과 밀접하게 얽혀있던 존재, 시체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악마. 그는 오랜 시간 미지 중 미지의 세계를 정관하며 외로워했다. 인간이 검은 공간에 홀로 삼켜지기를 바라면서도 인간의 틈에 섞여 살기를 원했다. 고독이란 개념으로 명명된 이 자는 한 개인으로서 프랑크라는 이름을 받았으나, 이 또한 제 껍데기였던 사람의 이름을 비튼 것이다. 짐승도 계보가 있기 마련이죠. 다만 나는 달라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없으니 태초의 인연도 없습니다.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 무엇도, 다른 이와 연결되지 못했다는 거예요. 어쩌면 그도 제 인연을 원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광활한 세상에서, 누군가는 자신을 이해하기 바라며….

 

―인간 문명은 볼 수 없는 가능성에 대해 논하고 가리어진 부분에 상상을 덧대며 발전해왔기에 타인의 시선이 닿지 못한 곳을 인지하는 자는 고독해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삼라만상을 이해한 이는 한 사람-영원하고도 무한한 시공간에 파묻힌 작은 점-의 가치를 논하기 어려운 탓이다. 프랑크가 고독을 먹으며 자라난 존재이자 학자라 일컬어진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 01

 

1999. 12. 25.

 

세계를 바다에 빗댄다면 인간이 선 땅은 작은 섬이라 할 수 있다. 바닷가에 서서 볼 수 있는 곳은 수평선까지였기에, 지식은 한정된 반면 무지는 끝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사람은 자신이 저 물 속에서 태어남을 본능적으로 안다. 육지를 벗어나 바다를 알아가고자 하는 욕망, 최종적으로는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 인간이 이에 사로잡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터다.

 

……여기까지가 하류의 이야기였다. 설탕이 진득히 가라앉은 자판기 커피나 한 모금 마시며 꺼낼 대화 주제는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에 나올 말은 더욱 아니었지만, 제 옆의 이는 지적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애초에 이 곳의 사람들은 붕괴를 토벌하기 위해 소집된 것 뿐이지 않나. 무리한 계획이었던 공조가 한계에 부딪히는 사이, 그 아래에 넝마가 된 사람들에게서 현실 감각 따위는 멀어진지 오래였다.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 보다는 망상에 빠지는 편이 나았다. 하류는 세기말의 종말론에 힘을 싣듯 붕괴된 거리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프랑크는 그런 하류의 얼굴을 응시했다.

 

“하류. 당신이 말하는 세상에서 악마는 무엇인가요?”

 

“글쎄.”

 

잠시간의 고민 끝에 다시금 입술이 벌어졌다. 바다에서 떠밀려오는 부유물이려나? 나름 무난한 답이었다. 평범하네요. 짧은 대꾸와 함께 프랑크는 종이컵을 입가로 가져갔다. 들척지근한 액체가 입 안에서 끈적대는 듯한 감각이 썩 기분 좋게 와닿지는 않았다. 정작 건넨 이는 커피가 지나치게 달았다는 사실을 모르겠지. 그는 이런 사소한 영역에서 상대와의 차이를 느끼곤 했다.

 

“악마는 각자의 기원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데다 매커니즘조차 제각각이야.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영역은… ‘바다 어디에선가 나타나 인간의 공포심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정도일까.”

 

아, 심장을 가르면 죽는다는 것도. 시덥잖은 말이 덧붙여졌다.

 

“사실 그래서 좋았어. 인간과 세계를 잇는 미지의 존재… 그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하나하나 헤집으며 알아내고 싶은 거지.”

 

그리고, 해체한 틈으로 건너편의 공간을 보는 거야. …프랑크는 이따금 하류를 이해하길 그만두곤 했다. 무심한 한 마디에 묻어나는 꺼림칙한 생각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불유쾌한 감상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 지금 이런 눈빛도. 하류의 시선은 어느새 프랑크를, 정확히는 눈이 아닌 목의 입을 향하고 있었다. 희멀건 눈동자는 지나치게 긴 시간 동안 시커먼 구멍을 담았다.

 

“당신, 너무 오래 보잖아요.”

 

시선이 거슬렸는지 그가 목덜미를 매만졌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요? B급 슬래셔물이라도 찍고 싶은 겁니까? 저번에도 비슷한 걸 묻더니…. 하하, 돌아오는 것은 짧은 웃음소리였다. 네 몸의 주인이었던 사람과 제일 차이 나는 곳이 그 입이잖아. 하류는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갑을 꺼냈다.

 

“나는 프레디와 프랑크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어.”

 

“아직까지 죽은 배우에게 푹 빠져있진 않다는 건 다행이긴 한데요.”

 

“고독과 제일 거리가 멀어보이던 인간이었잖아. 팬들에, 영화 관계자들, 애인까지….”

 

인간 틈에 섞여 살아보고 싶다며 배우를 잡아먹더니, 그 몸 때문에 오히려 더 고독해진 악마라는 건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하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에게 있어 타인이 살아온 시간은 쇼트의 집합체로서 기능한다. 스크린 너머에서, 얇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를 관찰하고 분석한다. 목에 자리 잡은 커다란 입을 향한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인간도 짐승도 닮지 못한 모양새. 손을 비집고 넣으면 헤집을 수 있는 거리이나, 빛이 들지 않는 탓에 그 안은 보이지 않는다. 미지의 영역을 향한 이끌림, 호기심… 아, 이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구나. 프랑크는 제 감정을 깨달았다. 눈 앞의 남자는 저를 보며 ‘자극적인 캐릭터네.’ 라는 감상이나 가질 것이 뻔하니까. 그러던 중 하류가 짧은 침묵을 깬다. 마치 속내라도 읽은 양.

 

“이건 지금의 ‘너’를 이해하고 싶다는 인간적인 관심이야.”

 

어딘가 어긋난 이야기를 나열하는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다. 나름 진지한 듯 표정이 지워진 얼굴을 보면, 마음에도 없는 이유를 지어낸 것은 아닌 듯했다. 스크린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인간의 사고는 이해 받기 힘들기 마련이고, 인간을 삼켜 살아가는 이는 뒤엉킨 사고를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 02

 

2000.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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