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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Sayoung
Bae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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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一, 십十, 백百, 천千, 만萬, 십만十萬, 백만百萬, 천만千萬, 억億, 십억十億, 백억百億, 천억千億, 조兆, 경京, 해垓, 자秭, 양穰, 구溝, 간澗, 정正, 재載, 극極.

 

항하사恒河沙, 아승기阿僧祇, 나유타那由他,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無量, 긍갈라矜羯羅. 아가라阿伽羅, 최승最勝, 마바라摩婆羅….

 

 

불가설불가설전不可說不可說轉…….

 

 

 

가마달라伽麼怛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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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는 것이 지쳐 포기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더 지쳐 다시 헤아리는 나날.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수보다 더 큰 수를 인식할 수 있었을 때 사내는 비로소 인간을 벗어나 신선神仙이 되었다.

  암흑 세상 속에 모습을 감춘 질량뿐인 존재를 알아볼 수 있게 되고 정신을 갉아먹는 색과 소리에서 자아를 지킬 수 있게 되며,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인 형태의 중심을 갖추고 원하는 시공간으로 도약해 나갈 수 있는 존재. 도사라 불러도 마땅하며 선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인이 되자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되짚어 봤다.

  때는 아주 오래전, 아직 그가 속세의 인간이며 지구라는 별도 존재했을 때였다.

 

 

  단단하게 굳은 나무껍질을 떼어내고 그 안의 여린 섬유질을 발톱으로 얇게 깎아 씹어 삼키던 시절, 그는 어느 새와 물고기도 가지지 못할 빛깔을 몸에 두른 선녀仙女를 만났다. 선녀는 연인처럼 달콤하고 스승처럼 인자한 목소리로 그에게 인간처럼 살아가는 법과 세상의 구조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 그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 그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기억해야 할 것을 모조리 알려준 선녀善女는 버드나무 가지보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에 빛나는 구슬을 물렸다.

  “이 환약을 삼키면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답니다.”

  그 방법이 불로불사가 되는 것이라곤 하지 않고서, 선녀는 속삭였다.

  “당신이 고통과 속세에서 벗어난다면 저와 함께 할 수 있어요.”

  그것이 언제가 될 거라곤 말하지 않은 채, 선녀는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놀랍도록 보드라운 감촉이 입술을 매만지다가 구슬을 밀어 넣는다. 목구멍 안으로 구슬이 삼켜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선녀는 초승달처럼 휘어진 미소를 지은 채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 후로 그는 여느 인간과 다름없는 삶을 지내왔다. 다만 끝나지 않는 삶을.

 

그렇게 그는 사람들에게서 ‘우주’라고 불리는 공간에 도달하게 되었다.

 

 

 

 

 

 

 

 

 

 

 

  지구라 이름 붙여진 별이 먼지가 된 것도 터무니없는 옛날로, 돌아갈 곳도 도달할 곳도 없이 떠다니기만 하는 세월 속에서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손을 휘두르면 바람이 일고 다리로 뛰어오르면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던 강인한 몸은 광활한 침묵 속에서 아무런 현상도 일으키지 못했다.

  별과 같은 세월이 새겨진 육체와 정신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별이라 부르기에 마땅한 것이니. 숨을 쉴 수 없는 몸. 뛰지 않는 심장. 부처에게서만 나온다는 사리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것처럼, 그저 검은 머리 청년의 모습을 한 물질. 별이 회전하는 의미를 아무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우주를 떠도는, 그저 하나의…….

 

  별과 다름없는 암석.

 

  드넓은 우주에 수없이 많은 별이 있다고 한들 무한의 공간을 채우기에 무한의 별은 부족할 뿐이라, 영원의 하루가 지난 후에는 별빛 한 줌 보이지 않는 어둠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만이 오직 그곳의 별星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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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아도 떠도 암흑뿐.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온몸을 짓누르면 원망이나 한탄이라 이름 붙이기에도 미적지근한 감정들이 회오리쳤다. 결국 이름 없이 떠나간 그 감정들은 향하는 이가 누구인지만이 명확했다.

 

  선녀는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하고 있다면, 혹은 잊어버렸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이 허무함을 달래주는 여흥이었다. 그조차 지쳐 생각을 멈추고, 다시 수를 세고, 세는 것을 멈추고, 다시 수를 세어 도사가 될 때까지도 결말지어지지 않은 생각. 아직도 재회치 못한 인연.

  인연因緣?

  차마 인간이 아니게 된 그와 감히 인간도 아닌 선녀의 연을 과연 인연이라 칭할 수 있을까.

  그는 도사는커녕 불로불사가 되기 이전에도 스스로 인간이라고 칭할 마음은 없었다. 불이 타오르는 목적만으로 타오르듯 산다는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생이었다. 짐승과도 같은 삶이라고 매도당하더라도 생명으로서 그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제 무수한 시간 속에서 인간으로 살려 하지 않았던 자는 인간이 되고, 이윽고 인간을 초월한 신선이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하나의 목적만 가진 채 우주를 떠돌았다.

  더 이상 산다는 목적은 아니었다.

 

  세어 온 숫자로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것을 보아왔음에도 아직 선녀는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선녀가 이미 존재치 않는다는 생각만은 들지 않았다. 허무함을 달래는 여흥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로 형용 될 정도의 감정이라면 입에 담지 않는 게 낫다. 칼질 한 번으로 끝나버릴 연이라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좋다.

  나유타의 세월을 넘어서 그대를 만나러 왔소.

  그런 낭만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으리란 건 분명했다.

 

 

  끊임없는 생각은 결국 시간에 도달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지독히도 잘 보여주는 것은 그 누구도 체감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오직 그 둘에게만 새겨진 시간뿐이었기에. 그걸 위한 영원이었다고 무심코 생각할 정도로. 애타게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열망하고, 파헤치고 싶어 한들 미지를 설명하는 것만큼 낭만이 없는 일은 없기에.

  단 하나 분명한 진실은, 인어의 살을 먹은 자는 불로불사가 되어 인어의 생간을 먹을 때까지 구천을 떠돌고. 선녀가 내민 구슬을 삼킨 사람은 몸속의 사리가 전신의 크기가 되어 땅과 하늘이 먼지처럼 스러진 후에도 썩지 못하고 끝없는 공허와 약간의 물질로 구성된 우주를 헤매게 된다.

  그가 만난 선녀는 그야말로, 우주의 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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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를 가득 채우는 파도 소리가 들릴 날만이,

그가 선녀와 다시 해후하는 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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