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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 side of the moon
Zero
J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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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은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와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수 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작은 동물에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종종 시선을 돌릴 때 가 닿는 곳이 숨 막히는 공허일 바에는 노랗고 동그란 두 눈을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사방이 환하고 어둡고 별천지에 하늘이 곧 우주였다. 나는 달의 어두운 면에 서 있다.

 

  어느 정도 전지전능한 마녀의 손에서 태어나 수십 세기 동안 마법으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소년은 허리까지 오는 은색 머리카락을 의미없이 쓸어내리며 담당자로부터 고양이는 달에서 키우기 어려울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어둠과 빛의 경계선에 있는 달나라의 관청에서는 지구에서 달로 이주한 소수의 이주민들을 관리하고 이와 관련된 문제를 처리하는 작은 부서가 있었다. 배치된 인력은 고작해야 서너 명 정도. 달은 삼백육십오일 스물네시간 육십분 등으로 이루어진 친절한 땅덩이가 아니다. 인간이 살 수 있게끔 만들어진 두꺼운 돔 속에 공기를 가두고 사계절을 인공으로 꾸며내는 건 가능했지만 시간은 지구의 기준으로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넋을 놓고 데스크를 손끝으로 두드리며 조각난 시간을 죽이던 차에 ‘실제로 살아 있는 고양이’를 데려오려면 그에 맞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아직 그만한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으니 다음 기간에 다시 건의를 달라며 재차 기각당했다. 대신 담당자는 소년에게 기계로 만들어진 반려동물을 모아둔 카탈로그를 건네며 초승달처럼 둥글게 입매를 올려 웃었다. 담당자 또한 사람의 모형으로 만들어진 기계였다. 서비스 직종은 대체로 사람들의 요구에 감정적으로 혹사당하지 않는 기계로 대체된 지 오래였다. 지구에서 한 차례 이 유행이 돌고, 힘겨워하던 공무원들은 얼마 안 가 화사한 미소를 달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소년 역시 마녀로부터 태어나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으나 저 기계들보다는 분명 덜 인간적이었다. 적어도 인조인간들은 인간을 모방한 거니까. 출발선부터 다르다. 기계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괴물로. 소년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 늑대인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조 반려동물 카탈로그를 한 장씩 넘기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빨간 불에 건너도 이 불량한 소년을 치고 지나가는 자동차는 없었다.

 

  집에 도착한 소년은 습관처럼 겉옷을 벗고서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세척하고 지구의 냄새를 담은 향수를 전신에 뿌렸다. 소년이 가진 마법의 편의성은 삶을 단순하고 지루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마법을 사용하지 않게 된 지 한참 지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인류는 끝없는 편의성을 추구했기에 바닥에 먼지가 쌓이면 청소기가 부리나케 달려나와 더러운 자리를 빙글빙글 돌아다녔으며 거울에 치약이 튀는 순간 호스가 세차게 물을 뿌려 흔적이란 흔적은 모조리 씻어내렸다. 어쩌다 달에 오게 됐더라? 아주 먼 옛날 달에 가 보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날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함께 우주선에 올라탔다. 무중력의 공간으로 쏘아 올려진다고 하여 겁을 먹을 사람들이 아니어서 -실제로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살아남는 데 재능이 있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나는 쿵쿵 뛰고 요동치는 너의 심장 소리가 듣고 싶었어. 미지로 향해 뛰어드는 네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살아 있고 눈이 부시게 빛이 났으니까. 로켓의 엔진이 타오를 때 나는 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인간으로서의 열정에 귀를 기울였어. 대기권을 빠져나가고 나서 순식간에 주위가 고요해졌지만, 네게서 나는 소리만큼은 변함이 없었어. 난 다른 어디도 아닌 너의 안에 있었거든.

  …남자와 소년, 그리고 신나하던 마녀 셋이서 달에 도착해 서로의 감상을 나누던 날 소년은 별다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직 사람이 살 수 없고 무한히 펼쳐진 별의 바다 속에서 발 디딜 수 있는 땅은 너무 비좁아 당장에라도 추락할 것만 같았다. 내가 나로 이루어진 땅 위에 서서 서로를 억지로 짓밟아대고 있잖아. 소년은 달을 그저 지구의 운석 충돌로 인해 떨어져 나온 땅덩어리로 볼 수 없었다. 그건 나였어. 나는 내 위에 서 있었어. 왜냐하면 마녀가 자신의 살을 떼어내 나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마치 달에서 굴러다니는 돌 하나를 주워다가 나를 빚어낸 것처럼, 팽창하고 폭발하고 딱딱하게 굳으면 딱 이 모양 그대로겠지. 그리고 여전히 소년은 달을 삼킨 늑대의 위에 누워서, 뜨거운 피부 바깥으로 세워진 집에서 살며 하얀 털을 가진 인조 고양이 사진이 실린 카탈로그를 집중해서 읽고 있었다. ‘아마 회색 고양이를 가장 좋아할 거야.’ 고객의 취향에 맞추어 날씬하고 길다란 대형 고양이부터 귀가 접힌 고양이, 다리가 짜리몽땅한 줄무늬 고양이, 살이 쪄서 뒤뚱거리는 비만 고양이 등등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때, 인조라고 하나 생명을 적나라하게 모방하고 기계로 찍어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소년은 자신의 특이성에 대해 의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달에 정착해서도 스스로를 향한 의심과 고찰에는 끝이 없었다. ‘나도 이제 그저 그런 평범한 존재가 되고 만 거야.’ 소년은 노란 눈을 가진 회색 고양이와 오드아이가 매력적인 하얀 고양이에 체크를 해 두고 카탈로그를 베개맡에 던져 두었다. ‘당신의 반려동물의 색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 큼직한 베개 사이에는 꼬질꼬질한 회색 늑대 인형과 얼어붙은 강아지 한 마리가 사이좋게 끼여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을 만드는 건 소년과 남자 둘이 가장 잘 해내고 특히 능력 있다고 뽐낼 만한 영역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소년이 자꾸만 새로운 것을 들여오고, 연인의 취향에 맞추어 환경을 꾸미고 하는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소년은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고개를 돌리면 창밖으로 우주가 있다. 미지였던 달을 밟게 된 것처럼 언젠가 온 우주도 미지가 아니게 될 것이다. 소년은 남자의 미지가 끊어질까 봐 두려웠다. 평범한 일상을 바라고 안주하기를 원하는 소년과는 달리 그는 끝없이 인생에서 색다른 퍼즐 조각을 찾아다 맞추어갔고 판은 계속해서 넓어졌다. 올해 하고도 이천 년 정도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다른 은하계로 넘어가 새로운 지구와 달을 찾을지도 모르지. 아, 나는 당신을 위한 가정을 너무도 오랜 시간 하느라 모든 생각이 가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무엇이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뤼도빅 옌센 프리들뢰르는 집에 틀어박혀 우주를 두고 글을 쓰는 소년과는 달리 바깥으로 나가 공무를 수행한 뒤 규칙적인 시각에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 돌아오는 거야, 제기랄. 허구의 중력이 신체를 핵으로 밀어 내리고 점점 더 나와 나 자신은 하나가 되어간다. 최근들어 이 감각이 빈번하게 찾아오고 있었다. 자꾸만 새로운 것을 들여오고, 연인의 취향에 맞추어 환경을 꾸미는 건 무한히 확장하는 정신과 육신을 이루고 있는 미세한 틈을 메우기 위해 방사선 물질로 병이 든 지구의 먼지를 흡수하는 행위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가정과 의문이 늘어갈수록 소년은 남자를 그리워했다.

  이런 나라도 정말 괜찮겠어? 지구를 중심으로 달이 원을 그리며 돈다. 작은 점에 못을 박고 빙글빙글 회전하며 인력에 저항없이 끌려다닌다. 인류는 달을 포함한 우리 은하를 한참 전에 지나쳤다. 잠깐 머무를 정거장을 개간하는 데 드는 시간이 다소 길어졌을 뿐이다. 이것 좀 봐. ‘진짜 고양이’를 갖고 싶어서 짧게 외출했다가 돌아온 뒤로부터 침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고. 연결된 전화선이나 열화된 인터넷으로 달려가 당장 너와 접촉하고 싶어. 애타게 찾고 부르면 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평소보다 이르게 퇴근하겠지. 어서 와, 내 사랑. 길게 기른 금발을 은빗으로 빗겨 줄게. 지구에서 있을 때보다 건조해진 피부 위를 부드러운 크림으로 덧발라 줄게. 달에서 만든 가공 치즈는 더이상 구식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환상이 아니지. 깨끗하게 씻은 뒤 우리는 함께 카탈로그를 읽으며 어떤 고양이가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다음으로 미루고 잠에 들 거야. 자, 어서 돌아와 줘. 태양을 등지고 노란 조명으로도 밝힐 수 없는 차가운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나는 달의 얼어붙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어. 눈을 감은 달의 이면으로 헤엄쳐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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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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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본인이 고안해낸 이름이 붙여진 구역에서 살았다. 새 터전의 작명이란 게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 이름은 앞으로도 수 세기 동안 인류의 질서 기반이 될 민주주의에 의거하여 달 거주민들의 투표로 결정된 것이었다. 수 개의 후보들 가운데 80퍼센트 이상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자랑하며 발탁된 이름. ‘0의 바다’는 이름과 달리 고즈넉한 주택가의 모습을 표방하고 있었다. 나는 달의 밝은 면에 서 있다.

 

  몇천 년 정도를 살다 보면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보인다. 남자가 생각하건대, 그 흐름의 척도는 다름 아닌 낭만에 있었다. 음유시인이나 방랑시인이 존재하던 시절 사람들의 대화는 현대인들이 들으면 웃을 정도의 장황한 비유와 시구로 가득했었다. ‘좋은 아침’으로 모든 인사가 해결되는 사회에서 살던 사람이 ‘오늘 아침의 태양은 어쩌고 여신의 축복으로 따사롭고 바람은 저쩌고 신의 머릿결처럼 부드러우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나!’ 같은 인사말을 듣는다면 누구든 황당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시기가 현대였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조는 자연히 변해갔다. 백여 년 후 즈음의 사람들은 지금과 다름없이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를 건넸고, 그로부터 또 백여 년 후 즈음의 사람들은 ‘햇빛은 마멀레이드처럼 밝고 바람은 린넨 커튼처럼 부드러우니 어찌 좋은 날이 아닐 수 있겠어?’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나누었으며, 그 과정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관심이 우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현시점의 인류는 그 과도기에 놓여 있었다. ‘좋.아(좋은 아침의 줄임말)’, ‘굿밤’ 등의 극단적인 줄임말을 사용하던 시기는 지났고 사람들은 문어체로 이루어진 문장을 소리 내어 발음하는 걸 일종의 르네상스 현상으로 보며 즐기기 시작했다. 지도에 ‘만월의 기로’ 같은 서정적인 지명을 적어넣는 걸 즐기던 친구가 슬슬 몇 번째 환생을 거칠 시기가 되었으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의 직함은 ‘인류 터전의 개척자’였다. 예전이었으면 ‘우주 수색원’ 내지는 ‘스페이스 컨디셔너’ 정도의 이름이 붙었겠지만, 미지에 낭만적인 색을 덧입히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우주 양식의 창조자, 만민의 소통자, 또 다른 세계의 설계자 등 편의성이라곤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거창한 직함을 단 사람들이 이곳 ‘달나라 관리 청사’에는 수십 명이나 있었다. 그곳에서 인류 터전의 개척자인 옌센이 하는 일은 딱 이름에 걸맞은 종류였다. 남자는 터전을 지구에서 달로 옮기고 나서도 그 너머의 우주를 탐색하라는 사명을 받았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긴 시간 동안 비슷한 일을 질리지도 않고 해 왔으니 인류로서는 최고의 적임자를 찾은 셈이었다.

  그리하여 이런 일을 도맡아 달 거주구로 이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는 한달음에 소년에게 달려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이거 봐, 제로. 우리 진짜로 달에 갈 수 있게 됐어! 하늘 너머의 세상이 무한히 확장되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된 몇 세기 전의 남자는 거의 울면서 감격했다. 알아내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미지라니! 그러면서도 아주 옛날엔 밝혀내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들―만유인력이나 세상이 둥글다는 것 따위를 알게 될 때마다 손톱을 깨물며 초조해했다. 이러다간 모르는 게 없어지겠어. 이 똑똑하고 멍청한 인간들이 세상의 미지란 미지는 다 밝혀내는 잔인한 짓거리를 해내게 생겼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거대하고 오만한 착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래 살았는데도 도무지 전부 다 알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마침내 달로 향하던 날. 남자는 개척자가 되어 함선에 몸을 실었다. 연구원, 건축가, 환경 전문가, 우주 공학자 등 각양각색의 동행인들이 그와 비슷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약간의 긴장감, 그리고 그보다 많은 승리감. 사람들은 도취되어 있었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도록 행성 하나에만 국한되어 있던 영토의 확장은 그만한 흥분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인간을 별에 비유하자면 폭발을 앞두고 있는 셈이었다. 검은 머리가 부스스한 중년의 생태학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의 기분을 수십 년 만에 복기했고, 눈가에 거뭇한 그늘이 진 젊은 우주비행사는 앞으로 자신의 직업 전망은 버스 기사와 비슷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약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대는 설계사는 집에서 뉴스로 상황을 보고 있을 처자식을 그리워했으며 계기판을 점검하던 엔지니어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들고서 이 순간의 귀중함과 그들이 세우게 될 위대한 업적에 대해 떠들어 댔다.

  그리고 눈부신 금발을 가진 늙은 개척자는 연인의 손을 잡은 채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심장이 유독 거세게 뛴 건 너를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선이 발사되는 요란한 소음도 수 세기 넘도록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의 심장 소리를 가릴 수는 없었다. 나는 달에서 함께 살자는 우리의 결정이 옳은 선택이라고 믿어. 우주는 고질적인 우울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 마냥 좋은 환경만을 제공해주진 않을 거야. 그래도 말이지. 달은 너잖아. 내가 없으면 얼마나 외롭겠어. 지금까지 얼마나 외로웠겠어? 나는 최선을 다해 그 땅을 일굴 거고 사랑할 거야. 외롭지 않게 만들어 줄 거야. 물론 달은 그걸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너는 나를 사랑하는걸.

  0의 바다에는 제 것이라곤 하나도 갖지 못했던 소년과 목덜미에 0이 새겨진 남자가 산다. 사심이 가득 담긴 명칭이 정말로 채택됐을 때 소년의 눈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고서 잠시 몸을 차지한 마녀는 깔깔대며 웃었다. 온 세상과 역사에 너희를 새기게 됐네! 아니, 그게 참. 진짜 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데. 부끄러우면서 동시에 기뻤다. 그건 소년의 옆에서 남자가 가장 자주 느껴온 감정이기도 했다. 1의 바다나 2의 바다라는 이름이 다른 곳에 붙여질 법도 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이런 이름은 0으로 존재할 때만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0에서부터 시작된 달에서의 생활은 이제 제법 번듯해져서 환경만큼은 지구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인공 태양과 인공 달, 인공 대기, 인공 중력, 인공 토양 따위가 겁도 없이 지구를 떠나온 사람들의 삶을 받쳐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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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유독 그런 것들에 쉽게 적응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진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놈의 본질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는 바람에 주기적으로 우울함에 푹 젖고 마는 누구누구 씨를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지. 그러니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당신을 둘러싼 환경이 가짜이며 그러므로 나는 거짓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좋아. 청사에 신입 사원이 들어올 때마다 오리엔테이션 중에 꼭 나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소년은? 명사 앞에 인공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익숙해지기 한참 전에 만들어진 자아는 수천 년이 지나도 녹지 않는 얼음 속에서 터전을 만들었을까? 인류 터전의 개척자는 정찰 위성이 쏘아 보내주는 화면을 살펴보다가 문득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텔레파시 같은 마법은 여전히 사용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사용할 수 없겠지만 함께 오래 살다 보면 자연히 느껴지는 직감 같은 것이 있었다. 제로가 날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것도 아주 많이! 오랜 시간 동안 삶을 지속해온 남자가 그 시간 속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건 다른 일을 죄다 뒤로 미루더라도 소년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반려 늑대 사진이 주루룩 업로드된 모 인플루언서의 SNS 피드에서 벗어난 후 이제는 휴대폰이라고 불리지도 않게 된 개인용 전자 기기로 당일 반차를 신청했다. 노동권이며 복지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사회는 이런 게 좋았다. 특히나 근래에 들어서는 전 세계적으로 사원 복지가 당연시되는 추세인지라 시대의 선두에 놓인 달나라 관리 청사의 복리후생은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육아휴직 7년 보장은 물론이고 소위 말하는 칼퇴근 보장에 비상 근무 시 몇 배의 인센티브까지. 남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원들에게 제공되는 동물 케어 프로그램 안내를 보고 우리 집에도 늑대 한 마리가 살긴 하는데 어떻게 안 되려나 생각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을 죽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띠링, 소리와 함께 반차 승인 알림이 떠올랐다. 인류 터전의 개척자가 머물던 자리는 그 즉시 휑하니 비워졌다. 옌센 씨, 집에 가요? 네에. 기분 좋아 보이네. 데이트해요? 네에. 저것 봐. 저 사람 입이 귀에 걸렸잖아…….

  0의 바다로 날듯이 달려 집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까지 다다랐을 때 소년에게 전화가 왔다. 빙고. 남자는 모르는 척 통화를 이어 나갔다. 보고 싶어? 나도 보고 싶어. 마침 네게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조금 일찍 돌아갈게. 응, 응. 그나저나 그거 알아? 푸른 두 눈이 유리창 너머에 고정되었다.

  요즘 달맞이꽃 철인가 봐.

 

  케어 프로그램도 미지가 고갈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필요 없었다. 우리에겐 서로만 있으면 돼. 나는 너의 유일한 터전임과 동시에 개척자야. 너는 내가 평생 파헤쳐도 다 알지 못할 미지지. 오아시스 하나 없는 건조한 사막에서도, 모르는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 둘만 있으면 된다는 걸 오랜 시간 동안 증명해 왔잖아. 그리고 남자는 여전히 깜짝 서프라이즈로 연인을 놀라게 하는 걸 즐겼고 장난치는 걸 좋아했으며 꽃을 자주 선물했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샛노란 달맞이꽃 한 다발을 들고서 달린다.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도 이 불량 공무원을 치고 지나가는 자동차는 없었다. 그 이후의 산책로, 교량, 아스팔트 변두리를 지나는 동안에도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 뒷목이 점점 따뜻해진다. 그는 숨이 차도록 뛰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만의 미지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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