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루샤
Ren May
Lucia Lyev Belenov
#log
─XXXX년, 지구. 섹터 M-02.
거리에는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조 잔디 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발소리만이 다소 빠르게 들렸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 태양이 선사하는 따사로운 햇살에 그 몸을 맡긴 채 여유롭고도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뿐이다. 전원 연락 두절 상태로……이번에만 …번째의…수사 당국은… 단말기에서 보도되는 누군가의 안타까운 소식조차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과 뒤엉켜 흩어진다.
통, 통. 검은 구두의 코앞까지 파란색의 고무공이 굴러온다. 고무공의 접근을 인지한 걸음은 멈췄고, 공은 구두에 살짝 부딪힌다. 공이 반대편으로 굴러가기 전에 장갑을 낀 손이 공을 집어들었다. 쭈뼛거리며 남자에게로 다가온 아이는 놓친 공을 받아 제 어머니가 앉아있던 카페의 테이블로 돌아간다. 남자는 곁을 걷던 여자가 자신을 기다리느라 따라 걸음을 멈춘 것을 보고 몇 걸음 더 걸어 그 지척에 섰다.
"……태평하네."
"연맹에서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남자는 여자의 말이 누구를 향하는지 알았고,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도 알았다. 대우주 시대를 맞이한 지구는 더 이상 나라를 구분하지 않았다. '나라'라는 기준은 오래전, 기후 위기를 맞아 많은 땅이 사라지며 흐려졌고 3개의 연맹이 각자의 이념에 맞게 지구인들을 보호하고 그 안에서 생활해왔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덕분에 다른 언어나 문화는 장벽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살고 있는 곳은 민간인들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곳이었다. 그를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시행된 정책들로 지금과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주 탐사선을 비롯한 여객선이 잇달아 사라져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더라도 잘 해결될 것이라는 불확실한 희망으로 심각한 일로 대두되지 않는 그런 풍경. 이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풍경일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
남자의 말에 거리의 풍경을 훑던 여자의 시선이 남자의 얼굴로 향한다. 미미한 미소가 걸린 얼굴이 이미 답을 알고서 물은 것이 뻔했다. 색이 다른 두 자색의 시선이 그렇게 마주하길 잠깐 여자가 남자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옆으로 떨어지는 분홍색의 꽃잎을 잡은 여자가 남자의 손 위에 꽃잎을 올려둔다.
"덕분에 비번인 날에 긴급 소집을 하게 생겼으니까."
여자는 그리 말하며 꽃잎을 쥐여준 손을 잡고 먼저 발걸음을 뗐다. 아쉽게도 이 거리에 멈춰있을 시간은 없었다. 여자의 말 그대로 비번인 날에 긴급 소집으로 불려 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연맹의 평화가, 더 나아가 지구의 평화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자신들과 같은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때문이었으니 그 부름을 외면해서는 안 되었다.
* * *
탈의실에서 제복으로 갈아입은 뒤 들어선 소집 장소는 조용한 듯 부산스러웠다. 긴급 소집에 대한 불만과 의아함이 한곳에 모였으나 상부의 명이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의 결과일 것이다. 함께 소집 장소에 들어선 남자와 여자를 본 이가 웃으며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최근에 같은 함선에 오르는 동료 중 하나였다. 그는 하여간 둘은 사이도 좋다니까. 사관학교 때부터 동기였다고 했던가? 아, 그 전부터라고? 언제부터? 조금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마찬가지로 비번이었던 모양이나 개의치 않는 모양인지 너스레를 떨어왔다.
그렇게 어수선한 실내가 한순간에 차분해진 것은 청장의 방문과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 때문이었다.
"최근 은하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실종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모르는 우주 경찰은 없을 것이다. 최근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던 우주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실종 사건. 처음은 개인 소유의 우주 탐사선이 귀환하지 않고 있다는 탑승자의 가족으로부터의 신고가 시작이었다. 다음은 연구를 목적으로 떠났던 연맹의 우주 탐사선의 귀환하지 않았고, 그다음은 여객선, 물자를 나르던 화물선, 정찰을 나갔던 정찰 함선까지…….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수십 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니 최근 우주 경찰청에선 가장 중대한 문제였다.
"최근 정찰 보고에 의하면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던 우주선 한 대가 발견되어 현재 지구로 운송되었다. 탑승자는 전원 사망."
주변은 금방 술렁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 술렁거림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듯 청장은 목을 다듬는 소리로 다시금 경찰들의 집중을 끌어냈다. 그 술렁거림 속에서 남자는 예상한 일이었다는 듯 미동도 없었고, 여자 역시 오히려 그 술렁거림을 이해하지 못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요지는 우주선의 상태를 미루어보아 외부의 침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실종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니 우주 해적과 같은 집단의 악의적인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것. 지금부터 다른 실종 우주선 수색 및 범인 수색에 돌입해야 하며, 범인을 발견할 경우 체포 혹은 사살까지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청장의 해산 통보는 결국 출동 선언과 같았다.
일사분란하게 흩어진 이들은 각자의 사무실 혹은 함선으로 향했다. 뛰어가는 이가 있을 만큼 분주한 발걸음들 사이에서 여자는 좀처럼 걸음을 재촉할 생각이 없었다. 지척에서 걷고 있던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의 성향을 아는 다른 팀원들 역시 급하게 움직이거나 그를 재촉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변에서 여유로이 함대로 걸어갈 뿐이다.
"하아~ 비번인 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안 그래요, 메이?"
"휴식보다 사건 해결이 더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사망자가 발생한 이상 피해자가 더 나와선 곤란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뭐 다른 국민들에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도될 것 같던데."
"그가 안정을 도모하기 좋으니까요."
그는 남자에게 칭얼거림은 통하지 않음을 뒤늦게 눈치챈 모양이었다. 남자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었으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칭얼거리고 싶을 때 그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미미한 서운함이라도 느끼기 마련이다. 그 서운함을 달래고자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하필 시선이 마주친 이가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것이 뻔한 여자뿐이었다.
"이 팀은 내게 너무 척박해요."
함선에 오른 뒤에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동하기에 앞서 팀장은 정비공에게 현재 함선의 점검 상태에 대해 보고 받았으며, 나머지 팀원들은 각자의 개인실에 가벼이 짐을 풀었다. '루시아 례브 벨레노프'라고 자그맣게 명패가 붙은 개인실 앞에 남자가 섰다. 두어 번 가벼이 문을 두드리면 이내 문이 열렸고, 여자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니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서면 문이 닫혔다.
"데리러 오지 않으셔도 나갔을 겁니다만."
"아직 출발 안 했는데."
여자, 그러니까 루시아는 남자의 말에 정리하던 짐을 내려뒀다. 무어라 입을 열려다 하는 수 없다는 듯 옅은 미소가 가벼이 스치고 지나간다. 원래라면 이미 청장의 명이 있었고 함선에 올랐으니 공적인 영역이라며 선을 그었겠지만, 루시아의 선은 그에게만큼은 많은 부분에서 흐려져 있었다. 그를 본인이 알고, 남자가 알았으며, 두 사람은 알고도 선을 덧그리지 않았다.
"따로 할 말이라도 있어? 렌."
"아까 못 준 것이 있어서."
렌은 방에 들어오기 직전부터 줄곧 한 손을 등 뒤로 숨기고 있었다. 그의 말을 통해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달은 루시아는 시선으로 그것이 무엇이냐 물었고, 렌은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것을 내어 보였다. 벚꽃이 피어있는 자그마한 나뭇가지였다.
"나도 받았으니까 주고 싶었어. 우리가 돌아올 때쯤엔 전부 져버렸을 테니까."
벚꽃이 핀 나뭇가지가 떨어진 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주고 싶었다는 마음은 진심이었으니 함께 오며 꽃집을 찾던 찰나였다. 아마 꽃가루를 옮기려던 새가 꺾어버린 것이리라. 직접 꺾은 것이 아님을 말하지 않아도 오랜 시간 렌을 지켜봐 온 루시아가 알기엔 어려운 사실이 아니다. 더불어 떨어진 것을 챙겨왔다고 하여 그 사실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하지 않을 것을 렌 역시 알았다.
모처럼의 비번이었고, 벚꽃이 만개했었기에 함께 꽃구경을 나왔던 찰나였다. 꽃구경을 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울린 소집 연락. 데이트를 방해받은 아쉬움은 사명감도, 의무감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꽃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뽐내고는 하니 우주에서 돌아오는 순간엔 이미 푸른 잎이 돋아있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 곁에 봄의 기운을 조금 남겨두고 싶었다. 루시아가 렌에게 꽃잎을 쥐여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함선 내에선 천천히 지면 좋겠네."
* * *
우주를 떠돌고 있는 함선은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함선은 입력된 궤도를 따라 순항 중이었고, 레이더망에 잡히는 외부 우주선도 없었다. 간간이 걸려 오는 다른 함대로부터의 연락은 다른 함대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함대에 탑승한 경찰들은 평소와 같이 교대로 휴식을 취했다. 교대할 시간이 다가오자 '렌 메이'라는 명패가 적힌 개인실과 '루시아 례브 벨레노프'라는 명패가 적힌 개인실의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근무를 설 시간이었다.
"……."
"……."
두 사람이 근무를 위해 자리로 돌아갔을 때는 교대 근무를 위한 보고나 가벼운 인사 따위가 들려오지 않았다. 내려앉은 침묵을 그 누구도 깨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깨지 못한 것이다. 렌과 루시아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의자와 테이블에 쓰러져있는 시신들의 죽음에 대해서.
"이상합니다."
렌이 먼저 침묵을 깼다. 루시아는 무엇이 이상하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렌의 말이 비슷할지 확인하려고 했을 뿐이다. 루시아의 시선을 받은 렌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외부에서의 침입이 있었다면 함선 내의 경보가 울렸어야 합니다."
"문이나 창이 강제로 열린 흔적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의문점은 일치했다. 함선 내 시스템에 기록되어있는 데이터마저 없다면 그 의문은 사실이 된다. 그렇기에 외부로부터의 함선 개폐 시도가 있었는지, 혹은 사소한 충격이라도 가해진 적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스크린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등 뒤에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보시는 대로입니다. 그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이고요."
"스크린에서 손 떼!"
격양된 목소리.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개인실로 들어가려던 팀원에게 오해를 산 모양이었다. 렌의 등 뒤에 겨눠진 총구를 본 루시아 역시 소지하고 있던 총을 꺼내 팀원을 겨눈다.
"침착하고 총구 내리십시오."
흥분한 상대에게 마주 총구를 겨눠서 좋지 않음은 알고 있었으나 그는 어디까지나 루시아에겐 이론에 불과한 이야기였다.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니 여차하면 자신이 먼저 제압해야 했다. 더불어 외부에서의 침입이 없다면 지금 총구를 겨눈 이가 범인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선뜻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큰 소리에 개인실에서 뛰어나온 또 다른 팀원은 총을 겨누고 있는 두 사람을 진정시키기에 급급했다. 물론 그 덕분에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힌 이가 렌을 겨누고 있는 총구를 내림으로 인해 상황은 우선 일단락되었다. 남은 네 사람이 모여 다시금 시스템을 확인하였으나 외부에서의 침입에 관련된 데이터는 없었다.
상부에 대한 보고 역시 즉각으로 이루어져야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출되지 않은 데이터로 인해 내부에서의 소행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정확한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결국 의미 없는 보고가 되고 그 불똥은 모두에게 튈 것이 분명했다. 결국 네 사람은 서로의 의심을 조금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상황을 돌파하기로 하고 개인실로 흩어졌다.
* * *
"……."
"……."
각자 휴식을 취하고 보고 및 조치에 대해 논의를 하기로 한 시간이었다. 자리를 채운 사람은 렌과 루시아가 전부였다. 팀원들 사이에서 시간 약속은 절대적인 것 중 하나였기에 두 사람은 직감했다. 그리고 그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열려있는 다른 팀원들의 개인실, 그리고 흩뿌려진 혈흔과 시신.
색이 다른 두 시선이 마주쳤다. 이 함선에 남은 사람은 둘. 외부에서의 침입이 없고 내부의 소행이라면 결국 둘 중 한 사람의 소행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다른 이를 해할 사람이 아님은 두 사람이 가장 잘 알았고, 의심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다.
"얼마 전 수사를 하다 알아낸 정보가 있어."
"뭔데?"
"인체에 기생해 그 숙주를 조종하는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해. 근래 은하계에서도 발견되었고."
렌의 이야기에 루시아는 의문을 표했다. 그렇다면 그 정보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 공표되지 않은 거지? 렌은 답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어서 모든 사람을 조사해야 하니까. 불안감을 심게 되잖아. 결국 그놈의 심리적인 안정과 평화였다.
"상부에서도 암암리에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결국 이 사달이 나는 거고."
루시아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던져지면 두려워하거나, 불안감을 표했을 것이다. 다만 루시아는 두렵고 불안하기보단 상부의 대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일 그 외계인의 소행이라면 이 사건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대비할 수 없는 위험은 지구인들을 공포로 몰아갈 것이고 연맹은 그를 바라지 않을 테니까.
루시아의 불만을 눈치챈 렌은 그 어깨에 가벼이 손을 올렸다 내렸다. 그리곤 스크린 패드를 터치해 그 외계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함선은 지구에서 꽤 멀리 떨어져 나왔다. 지금 위치에서 검색을 시도한다면 지구에서 정보망을 닫아두더라도 인근 행성에서 제공하는 자료가 있을 가능성이 존재했다.
"해당 생명체는 호흡기를 통해 인체로 침입한다. 그 형태는 물, 먼지, 꽃가루 등을 흉내낸다. 때문에 지구인이 적합한 숙주로 알려져 있으며, 숙주가 된 이를 외적인 요소로 구분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렌의 차분한 목소리가 함대를 울렸다. 그 검색 결과를 듣던 루시아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 결과대로 그 외계인이 숙주로 삼기 좋은 지구인들이 탑승한 함대였다. 매일 같이 물을 마셔야 했고, 상시 먼지에 노출되는 이들. 더군다나 자신과 렌은 꽃구경을 다녀왔으니 꽃가루의 가능성까지 존재했다.
"확인할까?"
육안으로 숙주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방법은 존재했다. 우주 경찰의 함대에는 지구인과 외계인을 구분하기 위한 기계를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구인으로 변장하고 눈을 피하려는 외계인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두 사람이 사용해 이상이 없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지더라도 두 사람의 결백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소용없지 않을까."
렌의 말대로 확인한다고 한들 소용없을 것이다. 결과는 둘 중 한 사람이 숙주로 외계인이라는 판명을 받거나 둘 다 지구인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둘 중 한 사람이 숙주라면 연맹은 이번 사건을 덮기 위해서 그 숙주인 자와 목격자를 없애려고 들 것이고, 둘 다 지구인이라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팀원들이 전멸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위험으로부터 배제하겠다는 명목으로 두 사람은 사라지게 될 것이 뻔했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는 잠시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함께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으나 만약의 상황을 무시할 수 없으니 서로를 위함이었다.
탕, 탕ㅡ!
그렇게 순조롭지 않은 운행을 이어가던 함선에 총성이 울렸다. 이어지는 것은 유리가 깨져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소리의 근원지인 판별 기계 앞에는 총을 둔 렌과 루시아가 있었다. 두 자루의 권총은 모두 최근 불을 뿜은 것인지 열기가 느껴졌다. 그 열기 아래로 부서진 판별 기계의 부품과 지구 연결된 통신기의 잔해가 나뒹굴었다.
"아무도 모르게 만들면 돼."
판별 기계가 부서진 이유는 간단했다. 아주 만약, 언젠간 나약해질지도 모를 마음이 스스로 판별을 해버릴까봐.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연인의 결과도 알게 될까봐. 연인에 대한 확실한 혹은 불확실한 정보를 줄 기계는 사라지는 것이 나았다.
"상관없어?"
"함께라면 상관없어."
"그래. 네가 상관없다면 나도 상관없어."
다시 몇 번의 총성이 울렸다. 총성은 함대 내에 부착된 위치 추적기 등의 지구와의 연결고리를 모두 망가뜨렸고, 총을 놓은 손들은 입력된 궤도를 지워냈다. 두 사람이 돌아갈 곳은 지구가 아니다. 목적지는 미상. 둘이 함께할 수 있는 행성의 궤도에 오를 수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제서야 개인실에 놓여있던 나뭇가지의 벚꽃이 한 잎 떨어져 방 안을 떠돌기 시작했다. 꽃은 아직 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