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MMERI
Gemma Alphecca Jerok
Meridiana Alfecca Jerok
#log


우주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있다. 그 중 어느 별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많은 별 중에서도 지구라는 이름을 가진 자그마한 별에서는 별의 이름뿐만 아니라 별과 별을 이어 그 별의 또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고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는데 그것은 우주를 떠도는 어느 존재들에게는 꽤 큰 관심사였다.
"겜마,겜마!"
어느 빛은 위로, 어느 빛은 오른쪽으로, 또 어느 빛은 앞쪽으로. 빛무리들을 크기 혹은 그를 이루는 성질이나 온도에 따라 분류하고 있던 손길이 멈춘다. 푸른 눈동자는 무수히 많은 빛무리가 아닌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존재를 담았다.
"응. 메리."
"바빠?"
"조금?"
메리디아나는 그 '조금'이라는 대답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제 쌍둥이는 정말 바빴다면 조금이라는 대답이 아닌 바쁘다는 것을 사실을 조금 더 명확하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겜마는 어쨌거나 모호한 대답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우주에 처음 빛을 발했던 순간부터 함께했던 메리디아나가 가장 잘 알았다. 물론 이따금씩 메리디아나를 위한답시고 바쁠 시간에도 시간을 할애하는 애정을 보이고는 했지만, 분류하던 손을 멈췄다는 것은 여유는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거짓말~"
메리디아나는 그 '조금'이라는 말에 괜히 거짓말이라며 그 팔에 엉겨 붙었다. 그런 애교 어린 행동에 겜마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야."하고 답하며 메리디아나의 머리카락을 가벼이 헝클었다.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서 머리카락을 헝클어두니 긴 머리카락은 더 자유분방하게 흩날렸다.
우선 겜마가 여유롭다고 할 수 없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겜마와 메리디아나처럼 태초의 별 조각에서 태어난 이들에게는 주어진 업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드넓은 우주에서 그 일들을 분담해 해왔고, 겜마와 메리디아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기준으로 성인이 되기 전까진 담당할 구역을 내어줄 수 없어 그들의 일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일을 마무리해야만 당분간 휴식이라는 것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급적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싶다가도 자신을 찾아온 쌍둥이의 소리에는 손을 멈췄다. 우선 지금 당장은 보조하는 역할이라고 하지만 이 자그마한 분류로 어느 은하계의 균형이 맞춰지고, 틀어지기도 했으니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제 반쪽의 이야기는 가벼이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아무리 가벼운 이야기 하더라도 이 드넓은 공간에서 직접 머무르고 있는 이는 단둘뿐이니까. 함께 분류 작업을 해도 되겠지만 지금의 일은 겜마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같은 별 조각에서 태어났으나 메리디아나가 겜마보다 조금 더 영특했으며, 무엇이든 조금 더 빨랐고, 조금 더 우수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니 겜마의 분류가 조금 더 남아있는 것은 익숙한 현상이었다.
"겜마! 우리 지구라는 별에 가보지 않을래?"
"저번에도 이야기했다가 할머님께 퇴짜 맞지 않았어?"
겜마 주변에 두둥실 떠오른 붉은빛이 도는 빛무리를 메리디아나가 한 쪽으로 떠올려 보낸다. 정작 분류해야 하는 겜마는 멈춰있는데, 손길을 보탤 셈이었다. 움직이는 빛무리를 보던 겜마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다시금 손을 움직였다. 도움을 받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제 몫을 떠넘기는 기분도 들었기에 맡기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여행을 다녀와도 된다고 하셨는데?"
"꽤 멀어."
"같이 가면 괜찮아!"
겜마는 이번에야말로 지구라는 행성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되겠구나 짐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리디아나가 지구로 다녀와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행성이 있음을 알게 된 직후부터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고, 그때마다 거리를 빌미로 별의 어른들은 그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허락하지 않으니 겜마 역시 자연스레 허락받지 못한 일이라며 메리디아나의 여행을 만류해왔었다.
메리디아나가 지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지금처럼 몸이 자라기 전에는 별 조각과 기운이 모이는 것을 다듬어준 자. 그러니까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우주에 대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가령…늑대라 불리우는 네 발 달린 생명체만 존재하는 행성의 이야기나, 보랏빛으로 펼쳐지는 밤하늘이 매우 아름다운 행성, 그 하늘에 넋을 잃고 있다 보면 미로에 빠지게 되어 열쇠를 찾지 않으면 평생 갇히게 된다는 이야기, 파스텔 물감을 풀어둔 것과 같은 아름다운 구름이 솜사탕처럼 달콤하다는 행성과도 같은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기에 별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만들기도 하며 그들을 기준으로 오랜 시간 신화처럼 전해진다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액자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액자를 들여다보는 느낌은 색다를 테니까.
"가서 뭘할 생각인데?"
"이야기 들려주기?"
"우리가 연구 대상이 될 거야."
연구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겜마의 말에 메리디아나는 말도 안된다며 울상을 지었다. 겜마는 “그런 표정으로 봐도 사실이야.”하고 그것만큼은 딱 잘라 말했다. 메리디아나가 관심이 있던 행성이었기에 겜마 역시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어른들, 혹은 간혹 마주치는 다른 우주의 여행자들에게 수소문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쌍둥이가 방문한 행성들에서는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 즉 외계인이라 불리울 수 있는 존재들에 대한 인식은 그 행성인들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산책하러 나가려고 문을 열고 나갔다가 복도에서 옆집에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했다. 그저 키가 조금 더 크구나, 작구나, 피부색이 다르구나, 얼굴이 다르다고 인식만 할 뿐 화두가 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구는 다르다. 우주에 대한 연구라는 것을 하고 우주선이라는 것을 만들어 지구라는 행성을 돌고 있는 위성에 도착하는 것을 막대한 결과로 여기고 있는 이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꾸준히 외계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이들도 있으며, 그들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으니 외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탈 없이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니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다시 한번 지구에서 우주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힌 겜마에 메리디아나의 볼은 불퉁해지고 만다. 메리디아나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처럼 겜마를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 역시 그 천성이 한몫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구인들을 만나면 지구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보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으나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꽤 아쉽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가고 싶어?"
"응!"
"왜?"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궁금하니까?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그래서 말인데 겜마."
이름이 불리우자 겜마는 다시 한번 메리디아나의 푸른 눈을 마주했다. 평소였다면 그 시선을 마주하고 방실방실 웃어왔을 텐데 슬금슬금 그 시선을 피하는 것이 겜마 몰래 무언가 곤란한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 겜마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아지자 메리디아나가 먼저 손사래를 쳤다.
"나, 나 사고 안 쳤어!"
"응. 그래. 그래서 말인데, 다음은?"
"우리 공간 지구 쪽으로 돌려놨어."
"……."
겜마는 메리디아나에게서 몸을 반쯤 돌렸다. 그리고 다시 멈췄던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무리가 이쪽, 저쪽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평소보다 빨라진 손놀림을 보고 있는 메리디아나의 시선 역시 흔들렸다. 겜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대답이 없어 그 흔들림은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겜마 역시 자신의 태도와 대답하지 않는 행동에 메리디아나가 눈치를 보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있어 결국 조금 늦게 입을 열었다.
"이 빛무리는 제자리에 돌려두고 가야 해. 별이 길을 잃게 할 순 없잖아. 메리, 도와줘. 더 멀어지기 전에."
메리디아나가 공간의 궤적을 바꾸어버렸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멈추어 있던 공간에서 별로 태어날 빛무리를 분류하고 있어야 할 자리로 보내는 것이 지금까지 쌍둥이가 보조해오던 일, 별의 탄생을 돕는 것이었는데 시작점이 달라져 버리는 것은 곤란했다. 물론 이는 자신들과 같은 이들에게는 커다란 실수는 아니다. 바닥에 흘린 별사탕을 줍듯 우주 길목에 흩뿌려진 빛무리를 주워 원래의 자리에 내려두면 되는 일. 하지만 이것은 겜마 스스로의 문제였다. 실수하고 싶지 않은 것, 다른 어른들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 메리디아나는 좀처럼 손을 빌리지 않는 겜마였기에 도와달라는 이야기에 불안한 기색은 언제 드리웠었냐는 듯 환한 낯으로 빛무리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 * *
태양이 숨어버린 시간은 달과 별의 시간이다. 적어도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개념은 그렇다. 태양이라는 별의 빛이 비칠 때는 하늘은 푸르고 많은 세상이 빛과 함께하며 생기를 띤다. 그리고 태양이 져버리고 달과 별이 뜨면 어둠이 내려앉고, 많은 것들이 잠에 든다. 지구에 도착한 겜마와 메리디아나는 그 점이 상당히 아쉬웠다. 그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 한다는 우주는 그 밤이라는 시간에 가장 잘 보이는데 밤이 찾아오면 휴식을 취하고 잠에 들어 그 우주를 바라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두 외계인이 서 있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시 하늘로 오른다. 잔디를 밟는 소리마저 고요한 시간, 메리디아나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겜마, 지구의 밤은 너무 조용해. 그 볼멘소리를 들은 겜마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서 더 우주와 닮았어. 언덕 아래 위치한 작은 마을의 불 역시 하나, 둘 꺼지던 때 두 외계인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메리디아나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고, 겜마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일었다.
"찾았다. 여기서 뭐 해? 어머니가 기다리셔."
"언니! 저기 봐! 이 별이랑 저 별이 나란히 있는데 유달리 반짝여."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찾으러 온 또 다른 아이였다. 언니라고 불렸지만 결국 얼굴도, 키도 꼭 닮은 것을 보아 그 자매 역시 쌍둥이였던 모양이다. 언니의 걱정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천진난만한 얼굴로 잔디 언덕에 앉아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그 언니는 물론이고 멀리서 지켜보던 쌍둥이 외계인의 시선 역시 밤하늘을 향했다.
"그래? 난 모르겠어. 어디?"
"저~기. 이렇게 누워서 보면 더 잘 보여!"
"옷이 지저분해지잖아!"
잔뜩 날이 선듯한 목소리였으나, 결국 그렇게 누우면 더 잘 보인다고? 하고 그 옆에 탈팍 소리가 나도록 함께 눕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동생이 손을 다시 뻗어 "여기서부터 이렇게 이으면 사람이야! 옆에 또 반짝이는 별을 이렇게 이으면 또 사람!"하고 말하면 옆에 누운 언니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겜마, 우리가 도와주면 안 돼?"
"뭐……그 정도야."
동생이 다시금 잘 봐! 하고 손을 움직였다. 아마 그 소녀는 자신의 언니의 눈에도 자신이 보는 것이 보일 때까지 그 손짓과 설명을 멈추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 마음은 겜마도 메리디아나도 알았다. 자신들 역시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내가 보는 것은 네가 보는 세계, 네가 보는 것은 내가 볼 세계.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같은 길을 걸어간다. 그러니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작은 소녀에게 우주인의 작은 도움은 중요하되 아주 사소한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겜마와 메리디아나가 각자의 손을 맞대자 손에서는 미미한 빛이 일렁였다. 손바닥 위에서 일렁이던 빛은 그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소녀들의 근처로 날아들었다. 빛은 두 소녀의 눈가에서 빛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다시 한번 소녀가 손으로 별을 잇기 시작하면 그 옆에 누워있던 또 다른 소녀는 "오!"하고 작은 탄성을 뱉었다. 그 눈에도 별이 반짝이며 이어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알 것 같다며 별처럼 빛나는 눈을 한 소녀와 그 동생은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그럼 저쪽의 별들도 어떤 모양을 닮았나 하며 수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갈까, 메리?"
"좋아~ 아, 겜마. 우리 돌아가면 아까 그 별. 진짜 별자리로 만들어줄까?"
"나쁘지 않네. 이름은…쌍둥이자리가 좋겠어."
소녀들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겜마와 메리디아나는 별의 공간으로 되돌아간다. 어두우나 잔뜩 들어찬 별의 궤적들로 결코 어둡지 않은 공간. 쌍둥이의 손이 움직이자 그 손끝에서는 별 가루가 흩날리는 것처럼 춤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손을 모아 별의 빛을 한 자리로 모으고 그 반짝임의 궤적을 이으니 그 궤적은 지구라는 행성 주변을 도는 별자리가 된다. 조금 전의 소녀들만이 아닌 다른 이들 역시 그 형태를 찾을 수 있고, 그 이름을 연상할 수 있도록.
태초의 별, 그 조각에서 빛을 품고 태어난 쌍둥이들은 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길을 찾으며, 그 이름을 명명한다. 우리는 별들의 이야기꾼이자 길잡이. 영원히 우주를 채워나갈 자. 그렇기에 많은 이야기가 그 궤도에 들어설 수 있도록 빛을 더하며 여행을 이어 나간다.
"겜마! 우리 다음에는 저 행성에 가는 거야!"
"행선지를 어디까지 정해둔 거야?"
"음, 지금까지는 지구 다음으로 628 행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