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잃어본 적 있어요?
아니면 누군가를 잊어본 적은요?
벨리타 루 윈클러는 직접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게 될 때면 버릇처럼 그 명을 끊어내기 전, 꺼져가는 생명을 향해 물음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던져지는 물음에 대답이 돌아온 적은 없다. 대답을 내놓기 힘든 상대만을 골라 그러한 물음을 던지니 어쩌면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그렇다. 눈앞에 있는 이는 이 도시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포박하러 달려든 히어로였다. 그 패기를 보며 벨리타는 “어머, 패기를 보니 신참인가봐요?”같은 소리를 했더란다. 많은 이들이 동경을 받을 수도 있었을 사람.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을 자. 분명 멋진 포부를 가지고 히어로 협회에 등록했을 것이다. 그 포부를 펼치기엔 마주한 대상이 너무 좋지 않았을 뿐이지.
“벨리타,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긴 생체 신호가 끊어진 것이 전달됐겠네요.”
“제가 막을 수는 있겠지만…….”
페이론을 괜히 고생시킬 필요는 없죠. 벨리타는 꺼져가는 생명 앞에 쪼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빌런으로 추정되는 이의 뒤를 밟는다. 빈틈을 발견했을 때 그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는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이었다. 다만 그 빈틈은 뒤를 밟는 것을 눈치챈 이들이 만들어낸 함정이었고, 신참 히어로가 밟은 이는 홀로 다니지 않았다. 빈틈이 함정인지도 모르고 속박을 노리던 것은 페이론 파렐의 반격에 의해 튕겨 나가 그대로 자신의 생명을 옭아맸다. 스스로가 혈혈단신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전개.
“목격자는 없나요?”
“예. 목격자는 없습니다. 함께 온 동료도 없었던 모양이고요.”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나직한 소리가 바람과 함께 흩어진다. 목격자가 없음은 다행인 일이었다. 벨리타 루 윈클러와 페이론 파렐은 빌런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회에서 정의되는 인물이지만, 민간인들에게 이유 없이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벨리타의 능력이면 목격한 모든 것을 없던 일처럼 잊고, 원래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으니. 더불어 동료가 없음이 다행이었다. 페이론 역시 동생을 죽게 만든 히어로 협회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품고 있었으나, 본디 천성이 악한 이는 아니니 살육을 즐기지도 않는다.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히어로들은 신변 보장과 보호를 위해 그들의 신체 반응이 협회에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다. 신체 반응이 끊어졌으니, 그 원흉을 찾아 제거하기 위해 마지막 위치를 확인한 뒤 빠르게 움직였겠지. 그러나 그 빠른 대응도 비웃을 수 있는 것이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이다. 히어로 협회에서 출동한 이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것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신입 히어로의 시신 한 구뿐이었다.
높은 건물 아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벨리타가 입을 연다.
“페이론은 혼자 다니지 말아요. 충분히 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러겠습니다. 벨리타께서도 혼자 나서지는 마십시오.”
“물론이죠. 저런 최후는 맞이하고 싶지 않거든요.”
* * *
“혼자 나서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
투두둑.
빗줄기라도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을 적시는 것은 검붉은 피. 반사적으로 페이론 파렐의 손이 뻗어져 나갔으나 그 손끝은 벨리타 루 윈클러에게 닿지 않는다. 분명 피격을 당한 것은 벨리타 한 사람뿐이나 페이론의 몸 역시 일순 균형을 잃은 탓이다. 누군가가 머리를 강하게 때린 것으로도 모자라 뇌를 흔드는 것만 같은 감각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벨리타 루 윈클러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본인이 가진 능력만으로는 지금까지 버텨올 수 없었다. 언제나 보랏빛 시선은 주변을 능숙하게 읽어냈고, 그와 동반되는 판단력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빌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단 한 번 포박되지 않았고, 알려진 정보마저 미미한 채 버텨내 왔다. 그러니 지금 페이론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한들 눈치껏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세뇌가 풀렸다.
벨리타 루 윈클러의 능력은 막강하다. 능력을 건 대상이 죽어버려서, 더 이상 꼭두각시놀음을 할 필요가 없어서 직접 그 실을 끊어버린 것이 아니고서야 풀린 적이 없는 능력이다. 그 능력이 풀렸다. 벨리타는 자신의 신변에 큰 위협이 찾아왔을 때라면 능력의 일부가 풀리리라는 것을 예측만 해왔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겪은 적은 없었다. 그러니 모든 것은 짐작에 불과하다 치부하려 하였으나, 페이론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나니 묻어둘 수 없음을 알았다. 저대로 두어서는 수풀과 대지가 평정을 되찾는 것이 아닌 뒤섞이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번에 손을 뻗은 사람은 벨리타였다. 그리고 그 손 역시 닿지 않는다.
손끝에서 가까스로 뻗어나간 미미한 연기는 페이론 파렐에게로 향했다. 페이론은 혼란스러운 와중 누군가의 손길이 다가옴을 알고, 본능적으로 뿌리쳤다. 손이 닿지 않았으니 쳐내지며 피부와 피부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허공을 가른 손은 다시금 그 얼굴을 가렸다. 연기가 본인을 감싸는 것을 인지할 틈은 없어 보였다.
“자, 이대로 잊는 거예요. 전부.”
“…무슨!”
페이론의 소리는 이어지지 않는다. 들려온 목소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마저도 뇌에서 크게 울리고 소용돌이쳤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머릿속에서 많은 것들이 휘발됨을 느꼈으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거부감이었을지 모를 것이 페이론의 몸 밖으로 분출되고 다시금 끌어당긴다. 그 끝에 잡혀 온 것은 이제는 잊힌 이가 늘 두르고 다녔던 반투명한 숄뿐이었다.
* * *
“분명합니다. 이 자는 과거 미스티와 함께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빌런 아닙니까.”
“신원을 조회해보니 히어로 협회에 소속된 적이 있긴 하더군.”
웅성이는 소리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꼭 죄수를 다루듯, 페이론의 몸은 철제 의자에 포박된 상태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한두가지가 아니니 히어로 협회 측에서는 많은 이들의 안전을 위해 협조해달라는 듯 말했으나 이는 경계였고, 제압이었다. 미스티와 그 일행을 발견했다는 보고.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던 과정에서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정황상 그 사건에 일조한 것이 분명한 이였다. 비록 쓰러져 있었고, 이후 일부 기억의 공백이 확인되었다고는 하나 방심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상황을 페이론 역시 인지하고 있기에 고작 밧줄 하나에 순순히 묶여있는 것이다.
“페이론 파렐이라고 했나.”
“…….”
“기회를 주지. 미스티를 잡아보게. 동생이 있다지, 여기에.”
동생이라는 단어에 페이론의 시선은 협회의 간부에게로 옮겨진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벨리타가 남겼던 기억 조작과 세뇌의 흔적이었다. 벨리타는 페이론의 동생이 히어로들의 손에 의해 죽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속삭임에, 그 세뇌에 속아 페이론은 히어로 협회를 향한 공격에 동참했다. 하지만 동생은 죽지 않았고, 히어로 협회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말이 보호였지, 지금 협회가 하는 말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동생의 안전을 바란다면, 순순히 협조하도록 해.
* * *
페이론이 716이라는 이름 같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미스티, 벨리타를 쫓아온 지도 벌써 한 달. 페이론은 이미 많은 곳이 비어버린 기억 속에서도 미스티의 행적을 쫓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백지처럼 지워졌던 기억 속에서 파편이 떠 오르듯 하나, 둘 흐릿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그 파편을 잡기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걸음을 옮기면 언젠가 다녀갔던 곳이다.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탄환. 그 탄환 중 페이론을 상처 입힐 수 있는 것은 단 한 발도 없었다. 멈춰버린 시간, 비틀어지는 궤도. 유리창, 발포자, 나뭇잎 등 주변의 많은 것들을 관통하는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정말 바보들이네. 페이론 삼촌을 상대로 총이 통할 리가 없잖아.”
“후후, 그들은 하는 수 없죠. 돌아갈까요? 여기도 없나 봐요.”
“삼촌~ 가자~”
기억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만 하다. 부분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음에도 명쾌하지 않다. 자신을 삼촌이라 부르는 아이가 있었던 것은 기억나나 그 아이의 이름과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돌아가자고 말하는 이가 붉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 냈지만, 자신이 그를 무슨 이름으로 불렀는지 역시 떠 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히어로 협회에서 불리는 미스티라는 코드네임만 매칭시킬 수 있을 뿐. 옅은 숨을 내쉴 때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그런다고 기억이 돌아올 것 같아요?”
페이론이 급히 몸을 돌리면 담벼락 위에 앉아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다. 그 얼굴은 역시 안개가 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능력을 사용해 그를 지척까지 끌어낸다. 끌려오는 감각이 있는 것 같다가도 여인은 눈앞에서 안개처럼 사라진다. 미스티는 정신계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게. 협회에서 일러준 정보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페이론, 당신 날 잡을 마음은 있나요?”
이번 역시 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귓가에 속살이는 듯한 목소리는 다시금 흩어졌고, 이번에는 바로 맞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 살아서 죗값을 치루게 할겁니다.”
“여태 그 누구도 내게 그렇게 하지는 못했어요.”
“그만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다시금 흩어지는 인영.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능력을 사용해 끌어와 보아도 잡히는 것은 없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듯한 목소리가, 머리 안에서 울릴 뿐이다.
─페이론,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정확히 모르잖아요?
─점점 잊게 될 거예요. 그때도 죗값을 운운할 수 있을까…….
그냥 지금에 안주하도록 해요.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걸요. 동생도 곁에 있으니 당신이 바라던 현실이잖아요? 그러니 전부 잊고……. 소리마저 흩어진다. 페이론을 감싸고 있는 것은 자욱한 안개다. 이 안개가 미스티의 능력인지, 그저 날씨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요. 전부 잊더라도 죗값 하나는 잊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이 바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페이론 파렐은 여전히 미스티의 행적을 쫓고 있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고, 떠오를만 하면 잊혀지는 기억 속에서 길을 찾는다. 이는 히어로가 가지는 사명감 따위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찾는다고 해서 더 나은 결과가 있으리란 확신도 하지 않았다. 설령 그 끝이 혼돈뿐이더라도 그는 인연이라는 연결고리를 쉬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정말 모든 것을 걷잡을 수 없어져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기에 그렇기에 쫓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안개일지라도.